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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의 행복한 경영이야기] '빈곤포르노' 모금 지양해야

2019-07-15 13: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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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백인 여자 연예인이 아프리카 마을을 방문해 소년가장인 마이클(Michael)을 만나 눈물을 흘린다. 마이클은 아버지가 두 살 때 돈을 벌러 집을 떠났고, 빵도 먹어 본 적 없는 불쌍한 아이를 ‘연기’하는 일종의 '모금방송 전문배우'다. 천진한 웃음을 짓던 마이클은 카메라가 걷히자 얼굴에 냉소를 머금으며 한마디 한다. “일종의 비즈니스죠”

현재 유튜브에서 150만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한 이 동영상의 제목은 ‘잘못된 아프리카 구하기(Let’s save Africa!-Gone wrong)’이다. 2013년 노르웨이 학생·학자 국제지원 펀드인 '사이'(SAIH)는 기존의 전형적인 ‘빈곤 포르노’를 비꼬기 위해 이 영상을 제작했는데 기부자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
기부 신뢰 향상을 위한 인식 변화가 필요할 때

​빈곤과 비극을 사실 이상으로 과도하게 부각해 동정심을 일으켜 모금운동을 하는 방식을 ‘빈곤포르노(Poverty Pornography)’라고 한다. 최근 빈곤포르노는 인권침해와 함께 특정 개발도상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양산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전 세계에서 자극적인 모금방송 규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국내 기부단체들도 이를 지양하고자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나눔’이라는 것은 강요할 수 없기 때문에 기부자와 기부단체의 인식 변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기부자는 감성에 호소하는 빈곤포르노 모금 방송을 보고 감성에 이끌려 기부하는 것을 지양하고, 기부단체는 후원자 모집에 급급해 자극적인 모금 광고보다 모집 주체, 목적, 사용처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해당 기부금 사용처를 명확하게 밝히는 건강한 모금광고를 한다면 기부자와의 신뢰도가 향상될 것이다.

이러한 신뢰 있는 기부문화가 되려면 일상화된 나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최근 이러한 사회적 공감대가 기반이 돼 '퍼네이션(Fun+Donation)'이라는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재미(Fun)와 기부(Donation)의 합성어인 퍼네이션은 쉽고 재미있는 방법으로 기부를 하는 새로운 형태의 기부문화를 뜻한다. 특히 퍼네이션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그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기부의 가치에 재미를 더한 새로운 기부문화

몇 해 전 유행했던 기부캠페인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최근 국내에서 다시 재개됐다. 루게릭병 환자를 돕는다는 취지의 이 캠페인은 동영상을 통해 지목된 사람들이 24시간 내 얼음물을 뒤집어쓰든지, 아니면 기부를 해야 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기부 황제' 빌 게이츠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참여했다. 우리나라도 한 연예인이 루게릭병 환우들을 위한 요양병원 건립 모금을 위해 이를 제안하면서 유명인들이 얼음물 뒤집어쓰기 릴레이를 펼쳤다. 한 달 만에 9억원이 모였고, 해당 자선단체는 기부금의 사용처도 명명백백 밝혔다. 즐기면서 기부하는 `퍼네이션(Funation)'의 대표적인 사례다.

방송가의 기부문화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 자동응답시스템(ARS)을 통한 모금 중심에서 즐거움을 중시하는 기부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연예인들이 커피를 만들고 카페를 운영해 발생한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거나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의 굿즈를 만들어 판 수익금 전부를 기부하기도 했다. 공연가에서는 티켓 매출을 기부하고, 나무를 키우는 게임에서는 실제 나무를 기르기도 한다. 일반인들은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연예인의 굿즈를 사며 부담 없이 기부에 동참했다.

일상 속 유쾌하고 건강한 기부문화가 정착돼야

퍼네이션은 영국 BBC의 자선 프로그램 ‘레드노즈데이(Red Nose Day)’, 미국의 '기빙튜즈데이(Giving Tuesday)‘가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빨간코의 날이라고 불리는 레드노즈데이는 영국의 자선단체 ’코믹 릴리프(Comic Relief)’가 2년 마다 주최하는 행사다. 1파운드 가격의 빨간 코를 사면 그 수익이 기부금이 되는 형식이며, 3월 둘째 주 금요일이 되면 사람들은 모두 빨간 코를 달고 빨간 옷을 입은 채 학교, 직장, 길거리를 다니기도 한다. 영국의 국영방송 BBC는 빨간코의 날 당일 오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모금을 위한 특별 방송을 한다. 돈이나 물건만 내놨던 단순 기부 방식이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유쾌하고 건강한 기부행사가 대중에게 널리 퍼질 때 일상 기부가 가능해지고 자선단체들은 ‘빈곤 포르노’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 뜻깊고 선한 영향력의 시너지를 돌아보고 우리 사회 전반에 기부에 관한 인식이 변화되어 우리나라에서도 빈곤포르노를 통한 모금이 아닌 레드노즈데이와 같은 즐거운 기부 문화가 정착되길 기대해본다.

글로벌경제신문 경영자문위원/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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