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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식의 놀고 쉬고 일하고] 노년의 거울 들여다보기

2019-09-11 09:2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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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식 前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우둘투둘한 인생의 질곡을 넘어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인생도 정점을 지나 삶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시계 바늘에 조종당하는 현직의 바쁜 삶도 끝났다. 이제 시간을 알리는 시계 소리가 없어지고, 비로소 시간 밖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사는 즐거움이 여기에 있는 걸까? 마음이 아주 넉넉하고 태평스러워졌다. 이제 학처럼 곱게 늙어 가기만 하면 되는 걸까?
하지만 삶의 가치와 무게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언뜻언뜻 혼란스럽다. 옛말에 ‘들녘에 풍년 들면 산중에 흉년 든다’고 했다. 마음이 너무 태평이면 걱정이 찾아드는 것일까. 그냥 이렇게 생각 없이 살다보면 인생이 허망해질 것 같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

“나는 내 인생의 어디쯤에 와 있는가?”

우리는 인생의 주된 직업을 은퇴하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살아온 날들도 많았지만 살아갈 날도 아직 많이 남았다. 그냥 가만히 늙어가다 죽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아닌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진정한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삶과 사랑과 그리고 열정에 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또 내가 살아야 할 삶이 무엇인지를…

해가 바뀌면 젊은 사람에게는 한 해가 보태지지만 나이 든 사람에게는 한 해가 줄어든다. 어찌 세월을 헛되게 보낼 수 있겠는가. 죽는 순간까지 삶에 긴장감을 놓지 말아야 한다. 다시 한 번 자신 있게 살아봐야 한다. 가장 훌륭한 업적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다.

노년의 어귀에서 이전과는 또 다른 삶의 목적을 찾아야 한다. 그냥 이대로 흘러가다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존재의 변신이 필요하다.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의 우화에 이런 얘기가 있다.

강물이 있었다. 강물은 깊은 산속에서 처음 생겨서 험준한 산골짜기를 지나고 산자락을 돌아서 들녘으로 나왔다. 세상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서 흘러 다니다가 어느 날 사막을 만나게 되었다. 사막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자신의 존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강물은 안다. 사막 너머에는 강물의 종착지인 바다가 있지만 어떻게 해야 그 바다에 이르게 될지 몰라 당황한다. 이 때 사막 한가운데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자신을 증발시켜 바람에 몸을 맡겨라. 바람은 사막 저편에서 너를 비로 뿌려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는 다시 강물이 되어 바다에 들어갈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증발시키는 비약을 거치지 않으면 장애물에 걸려 바다에 도달할 수 없다. 인생은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 변함이 없다면 곧 죽음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넘어서 이제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마음을 채울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새로운 삶의 목적을 찾아야 한다

젊었을 때는 직업인으로서 일을 했다. 그 일이 참으로 좋아서라기보다는 나와 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경쟁하면서 살았다. 성공하기 전까지는 결코 웃지 않겠다고 독을 품고 살아왔다. 얼굴에는 늘 긴장감이 서리고 냉기가 가득했다. 그러다 어느덧 희끗해진 머리카락과 처진 피부를 보며 얼마나 모질게 살아왔는지 깨닫는다. 먹고 사는 것과 감투 놀음으로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그게 성취인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닌 것을 깨닫는다.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매일 아침 산에 올라 숲속을 뛰어다닌다. 몸에 땀이 흠뻑 젖도록 뛴다. 그러다 문득 솟아오르는 해를 보면서 나는 누구이고,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내 인생의 마지막 3분의 1이 헛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른다. 그냥 무의미하게 우주의 이슬로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면 너무 허무할 것 같다는 것 말고는 말이다. 그래도 포기할 일은 아니다.

터키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는 '진정한 여행'이라는 시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라고 했다.

용기를 가지고 멋진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으면서 살아가자. 세월은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다.

행정학 박사/前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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