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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13) 에르미타시 박물관(7) -루벤스의 제2 황금기

2019-10-21 1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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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루벤스(1577~1640)의 그림 ‘바쿠스(Bacchus)’를 감상한다. 이 그림은 ‘땅과 물의 만남’과 같은 벽에 있다. 바쿠스는 로마 신화의 포도주와 황홀경의 신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이다. 그림은 한마디로 ‘부어라 마셔라’이다. 술잔을 든 바쿠스는 여인이 따르는 술을 받고 있고, 그 밑에서 한 아이가 떨어지는 술을 받아 마시고 있다. 바쿠스 오른편에는 한 남자가 병나발을 불고, 아이는 오줌을 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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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스. 사진=김세곤


이 그림은 루벤스가 1637년에 그린 것인데, 이 시기는 루벤스에게 제2 황금기였다. 루벤스는 1626년에 첫 번째 부인 이사벨라 브란트와 사별했다. 4년이 지난 1630년 12월에 53세의 루벤스는 16세의 헬레나 푸르망과 재혼했다. 37세나 어린 아내를 얻은 것이다.

헬레나 푸르망은 비단과 태피스트리 상인 다니엘 푸르망의 11번째 막내딸이었다. 1622년경에 루벤스는 그녀의 언니 수잔나 푸르망의 초상화를 그린 적이 있었다. 이 때 헬레나는 8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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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짚모자(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사진=김세곤


이 그림은 하늘의 푸른색과 여인 소매의 붉은 색이 대비를 이룬다.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와 뽀얀 피부도 대조적이다.
그런데 그림 제목은 밀짚모자인데, 모자는 모피와 타조 털로 만들어진 것인데 불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역하는 실수가 일어났다.

한편 루벤스는 1630~1631년에 16세의 헬레나 푸르망과 결혼 직후에 결혼의상을 입고 있는 초상화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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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상을 입고 있는 헬레나 푸르망(뮌헨, 알테 피나코데크 소장). 사진=김세곤


한마디로 헬레나는 아프로디테였다. 1639년에 추기경이자 왕자인 페르디난트는 형 펠리페 4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헬레나를 ‘안트베르펜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언급하였다. 초상화의 그녀는 행복해 보이지만 앳된 모습에 수줍음이 내비친다.

루벤스가 1630~1632년에 그린 또 다른 초상화 ‘헬레나 푸르망’은 풍만한 외모에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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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 푸르망(뭔헨, 알테 피나코데크 소장). 사진=김세곤

그러면 여기에서 루벤스의 첫 결혼에 대해 알아보자. 1608년 12월초에 루벤스는 8년간의 이탈리아 생활을 마치고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왔다. 종교 전쟁을 치렀던 안트베르펜은 1609년 5월9일의 12년 휴전 협정으로 평온을 되찾았고, 전쟁으로 파괴된 성상과 성화 복원이 시급했다. 이런 일감은 예술가들에겐 호재였다.

1609년 10월초에 32세의 루벤스는 21세의 이사벨라 브란트와 결혼했다. 그녀는 교양 있는 부르주아 계급 출신으로, 그녀의 아버지 얀은 법률가로 안트베르펜 시의 서기관이었고, 인문주의자였다.

결혼식은 산 미켈레 수도원 교회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교회는 루벤스의 어머니 마리아가 묻힌 곳이었다. 루벤스 어머니는 1608년 10월19일에 안트베르펜에서 작고했는데 루벤스는 임종을 보지 못한 불효자였다. 루벤스는 이사벨라와 결혼한 직후에 ‘이사벨라 브란트와 함께 있는 자화상’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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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브란트와 함께 있는 자화상(뭔헨, 알테 피나코데크 소장). 사진=김세곤

루벤스와 이사벨라의 모습이 대부분인 이 그림에는 애정이 가득하다. 루벤스 부부는 우아한 모자를 쓰고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정원에 앉아 있다. 이사벨라는 몸을 남편 가까이 둔다. 그녀의 손은 루벤스의 팔목을 잡고 있다. 의자에 앉아 있는 루벤스는 한 손을 칼의 손잡이에 얹은 채 관중을 향해 시선을 던진다.

그런데 루벤스 부부에 불행이 닥쳤다. 이사벨라와의 결혼에서 태어난 세 명의 자식들 중 장녀인 클라라 세레나가 1623년 8월에 갑자기 죽은 것이다. 이어서 1626년 6월에는 아내 이사벨라가 죽었다. 당시 남부 플랑드르를 할퀴고 간 흑사병 때문이었다.

루벤스는 실의에 빠졌다. 그리고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외교 활동에 전념했다. 1629년에 루벤스는 외교관으로 스페인과 영국 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영국에 갔다. 영국에서 루벤스는 찰스1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고, 화이트 홀 궁전 연회장 장식화 제작 주문도 받았다. 아울러 루벤스의 외교적 활동이 결실을 맺어 1630년에 스페인과 영국은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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