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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18) 에르미타시 박물관(12) - 렘브란트 방

2019-11-25 11: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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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이제 에르미타시 박물관 투어의 마지막인 렘브란트 방(254호)에 들어섰다. 네델란드 미술의 거장 렘브란트(1606~1669)는 초년엔 부와 명성을 얻고 화려하게 살다가 아내가 죽은 후에 파산까지 당하고 쓸쓸하게 죽은 화가이다. 그리고 보니 금년이 그의 별세 350주년이다.

먼저 본 그림은 ‘플로라 옷차림을 한 사스키아’이다. 1634년 작품인데, 28세의 렘브란트는 이 해에 20세의 사스키아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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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 옷차림을 한 사스키아. 사진=김세곤 제공

그림 감상에 앞서 렘브란트의 초기 생애에 대하여 살펴보자. 렘브란트 하르멘스존 반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은 1606년에 암스테르담에서 40km 떨어진 문화도시 레이덴에서 9형제 중 8번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라인 강 근처에 풍차 돌리는 방앗간을 가진 제분업자였는데, ‘반 레인’이란 가문이름도 ‘라인 강가의’라는 뜻이다.

네델란드의 상징 3가지는 풍차와 나막신, 그리고 튤립이다. 풍차와 나막신은 낭만이 아닌 ‘네델란드(Netherlands 저지대란 뜻)’의 생존을 위해 물을 다스리기 위한 산물이었다.

렘브란트는 부유해진 부모 덕분에 기술 교육을 받은 형제들과는 달리 7살에 라틴어 학교에 들어갔고, 1620년에는 레이덴 대학 철학과에 입학한다. 그런데 그는 학과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화가 야코프의 도제로 들어간다. 그는 야코프에게 3년간 배우다가, 1624년에는 암스테르담으로 가서 라스트만 아틀리에에서 6개월간 조수로 일한다.

1625년부터 레이덴에서 독립화가가 된 렘브란트는 1628년에 ‘자화상’을 그렸다. 그의 얼굴은 어둠에 가려져 있고, 오른쪽 볼과 귀 부분만이 밝다. 역시 ‘빛과 그림자의 화가’다운 터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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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클어진 머리의 자화상 (1628년,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사진=김세곤 제공

이 해에 행운이 찾아왔다. 네델란드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문학자 콘스탄테인 하위헌스(1596∽1684)가 그의 작업장을 찾아 온 것이다. 오란녀의 왕자 프레데릭 헨리의 비서이자 외교관이며 시인인 하위헌스는 렘브란트의 필치에 감명 받아 형제들의 초상화 제작을 의뢰했고, 미술계에 그의 이름을 알렸다.

1631년에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의 화상(畵商) 헨드릭 반 윌렌부르흐를 만났고, 그의 도움으로 1632년에 수도 암스테르담으로 이사하였다. 이 시기에 네델란드는 1618년부터 스페인에 맞서 종교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는데, 칼뱅주의 교리를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은행과 주식시장 등 자본주의가 꽃피었다.

이는 2006년 11월13일부터 11월 24일까지 중국 CCTV-2를 통해 방송된 12부작 역사 다큐멘터리, '세계를 호령하는 강대국의 패러다임, 대국굴기 大国崛起'의 제2부 ‘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 세계를 움직이다’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는 EBS에서 2007년 1월과 6월에 2회 방송했다.)

대국굴기 제2부 네델란드 편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7세기는 황금시대였다. 네덜란드는 일약 세계의 경제 중심이자 해운의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처음에 네덜란드인들은 농업과 청어가공으로 큰 부(富)를 거두게 되었다. 그 뒤 영국과의 무역 경쟁 와중에서 네덜란드는 상선을 가장 저렴하게 건조하고, 운송료를 낮추는 해상운송의 혁신을 이루어 ‘바다의 마부’라는 별칭을 얻었다.
한편 네덜란드는 1602년에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1619년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점령하였다. 1621년에는 서인도회사를 설립하여 1626년에 미국에 뉴 암스테르담을 건설했다.(나중에 영국이 이곳을 점령하자 이름을 뉴욕으로 바꾸었다.)

아울러 1609년에는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와 암스테르담 은행을 창립하고, 신용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이 새로운 경제와 상업체계는 네덜란드의 부의 열쇠였고, 지금도 경제의 핵심 축을 이루는 존재이다. 17세기 중반, 네덜란드는 세계 무역의 절반을 점유하였다.”

한편 암스테르담에서 렘브란트는 인맥이 넓은 화상 읠렌부르크의 중개로 부유한 상인과 직업전문가의 초상화 주문에 바쁜 시간을 보냈다.

1631년에 그린 ‘니콜라스 루츠의 초상화’는 러시아와 무역거래를 하는 암스테르담 부자 상인 루츠를 그린 것이다. 1632년에는 외과의사 길드 회원들의 주문으로 단체 초상화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를 그렸는데, 이 그림으로 렘브란트는 하루아침에 명성을 날렸다.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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