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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20) 에르미타시 박물관(14) - 다나에

2019-12-09 10: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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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네델란드 미술의 거장 렘브란트(1606∽1669) 방에서 '다나에(Danae)' 그림을 보았다. 다나에는 화가들이 좋아하는 주제였다. 렘브란트 이전에는 티치아노(1490~1576)가 그렸고, 20세기에는 '키스'의 화가 클림트(1862~1918)가 그렸다.

먼저 다나에가 누구인지부터 알아보자. 다나에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아르고스 국왕 아크리시우스의 딸이다. 아크리시우스는 다나에가 아들을 낳으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믿고 딸을 청동 탑에 가둔다. 그런데 다나에의 미모에 반한 바람둥이 제우스는 황금 소나기로 변신하여 청동 탑 안으로 들어와 그녀와 사랑을 나눈다.

열 달이 흘러 다나에는 페르세우스를 낳았다. 아크리시우스가 페르세우스를 죽이려하자, 다나에는 제우스의 핏줄이라며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그러자 아크리시우스는 딸과 외손자를 궤짝에 넣어 바다에 버렸다. 궤짝은 세리포스섬에 닿았고 페르세우스는 그곳에서 자랐다. 그런데 세리포스의 왕 폴리덱테스는 다나에를 아내로 맞고자 흉계를 꾸며 페르세우스에게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했다.

페르세우스는 모험 끝에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왔다. 그가 메두사의 머리를 자루에서 꺼내 폴리덱테스에게 보이자마자 폴리덱테스는 돌로 변해 버렸다.

한편 다나에와 함께 아르고스로 돌아온 페르세우스는 원반던지기 경기에 참가했는데 그가 던진 원반이 우연히 아크리시우스에게 맞아 죽고 말았다. 아크리시우스가 외손자에게 죽게 될 것이라는 신탁이 들어맞은 것이다.

그러면 먼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전성기를 이끈 베네치아의 화가 티치아노 그림부터 살펴보자. 티치아노가 1553년에 그린 '황금비를 맞는 다나에'는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전시돼 있다. 제우스는 황금비로 변신하여 다나에를 만나는데, 황금비는 금화처럼 동글납작한 모양이다. 재미있는 것은 다나에 옆에 있는 노파가 앞치마를 펼쳐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금화를 받고 있는 점이다. 탐욕의 상징이다.

렘브란트는 티치아노의 '다나에'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제우스를 황금 햇살로 변신시킨다. 침대에 누워있는 나체의 다나에는 황금 햇살이 신(神)임을 느끼고 오른 손을 들어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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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다나에. 사진=김세곤 제공


특이한 것은 다나에의 머리위에 있는 황금 조각이다. 이 조각은 에로스의 동생 안테로스인데 양손이 묶인 채 울고 있다. 어떤 평론가는 안테로스를 응답 없는 사랑의 상징으로 보고, 이 그림의 주제를 ‘아브라함을 기다리는 사라’로 보기도 한다. 한편 렘브란트 그림에도 노파가 나오는데 노파는 커튼 뒤에서 가만히 엿보고 있다.

다나에는 에르미타시 박물관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렘브란트는 다나에를 1636년에 그렸는데 1654년까지 오랫동안 가필했다. 엑스레이 분석결과 광범위한 수정 흔적이 나온 것이다. 그는 이 그림을 애지중지했다. 1656년에 작성된 재산목록에도 다나에가 들어 있었다.

한편 에로티시즘의 대명사 클림트도 다나에를 그렸는데 다나에는 에로틱하다. 붉은 머리칼을 풀어헤친 그녀는 몸을 웅크리고 자는 듯 꿈꾸는 듯 몽환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나체의 다나에 허벅지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황금비이다. 황금비는 씨앗이고 허벅지 사이는 관능과 잉태의 상징이다. 다다에는 살짝 벌린 입술 사이로 하얀 치아를 드러낸다. 뺨의 붉은 홍조와 입술이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또한 젖무덤 사이의 손가락 하나하나가 황홀경에 빠진 그녀의 느낌을 그대로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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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의 다나에, 1907-1909년, 그라츠의 개인이 소장. 사진=김세곤 제공

이렇게 다나에는 서양미술사에서 다양한 해석과 표상을 이끌어냈다. 순수와 탐욕, 금지된 사랑, 환희와 쾌락 등 다나에만큼 여러 해석을 낳은 주제도 드물 것이다.

여담이지만 렘브란트의 다나에는 수난을 당했다. 1985년 6월 15일에 러시아 출신 한 남자가 다나에 그림에 염산을 뿌리고 칼로 두 번 난도질하여 다나에의 팔과 다리, 그리고 얼굴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그림은 오랫동안 전시에서 철거돼 도난당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12년간에 걸친 복원작업을 하여 1998년 봄에 다시 전시됐다.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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