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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곤의 그게 말이지요] 용산이 주한미군의 식민지였나?

2019-12-12 08: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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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곤 前 국민일보 주필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페리클레스 이야기다. 30년간 아테네를 이끌었던 그는 대웅변가이기도 했다. 어느 날 그와 적대적 관계에 있던 사람이 “스스로를 페리클레스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오. 왜냐하면 설사 내가 그를 때려눕혔을지라도 그는 자기가 넘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그걸 사람들한테 설득시키는 재주를 가졌거든요.”

문재인 정부도 말을 잘 꾸며대는데 남다를 재간을 발휘한다. 경제가 나빠지는데도 좋아지고 있다고 우긴다. 건강한 일자리가 갈수록 줄어들지만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고 자랑한다. 집값이 치솟는다는데도 “부동산 문제는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친다. 북한의 김정은이 무력시위를 하면서 문 대통령을 조롱해대는데도 ‘한반도평화프로세스’, ‘평화경제’ 같은 속빈강정을 지치지도 않고 내놓는다.

한강 이북에서 미군 다 빼내면…

선동선전에 능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말을 잘 꾸며대기로 이 사람들을 따를 자가 있을 것 같지 않다(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잘 꾸미는 사람 중에는 어질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 적다고 했는데…). 말로 정권의 이미지를 마사지하는 재주도 발군이다. 처음엔 진실성을 의심하다가도 자꾸 되풀이, 자신 있게, 당당히 하는 말을 듣다보면 은연중 믿게 된다. 아주 믿지는 못하더라도 못 믿겠다고 하기가 좀 미안해지는 정도의 경험은 다들 해봤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정부는 11일 한‧미가 서울 용산 미군기지 반환 절차에 들어가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평택에 대규모 주한미군 기지를 건설하면서 용산 기지도 당연히 옮겨가기로 했다고 아는 국민으로서는 새삼스레 의미부여를 하고 나서는 정부의 태도를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대폭증액을 계속 밀어붙이니까 “우리라고 요구할 게 없어서 안 하는 것 아니다”라는 기분이 된 인상이다. 평택에 대규모 기지를 건설해 줬고, 또 이미 합의된 것이니 이제 와서 ‘된다, 안 된다’ 할 일도 아니다.
(미국으로서는 한국 주둔군 모두를 한강 이남으로 빼내고, 전시작전통제권까지 넘겨주고 나면 훨씬 홀가분해질 수 있다. 이후로는 우리 땅 안에서라고 해도 미국의 국익을 위한 군사작전은 수행하되 한국을 위한 작전은 회피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국이 전쟁국가라고 하지만 전쟁에 얽혀드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점에서는 우리가, 미국이 지고 있는 동맹부담을 덜어주는 격이 될 것도 같지만 이건 별도의 논의과제다.)

미군을 왜군, 청군과 같이 보다니

그런데 정부가 용산기지를 돌려받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덧붙인 평가가 어이없다. ‘용산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자신들이 용감무쌍하게 미국을 상대로 싸워서 마침내 용산을 돌려받게 된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합의된 대로 추진하게 된 일을 두고 말 꾸밈이 너무 요란하다.

정부가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용산기지의 역사’가 상세히 설명돼 있었다고 한다. 언론이 보도한 내용을 일부 옮기자면 이렇다.
“△고려시대, 몽골군이 침략해 용산에 일본 정벌을 위한 병참 기지 설치 △임진왜란 초기 왜군 용산에 후방 병참기지 조성(1592년) △임오군란 시 용산기지 북부에 청나라군 지휘소 설치(1882년) △청일전쟁 후 일본군 8000여명 용산 상륙, 조선 진출 전초기지로 활용(1894년) △미군정 시기 미 7사단이 주둔해 3년여 동안 사용(1945년).”

읽다보니 황당하다. 마치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되는 양 하는 표현 아닌가. 미군이 용산을 강점하고 있었던 듯이 ‘국민의 품으로’운운하고 있다. 몽골군, 왜군, 청군 등 침략자‧정복자들과 같이 취급당하는 주한미군‧미국정부‧미국 국민들의 기분은 어떨까?

이게 문재인 정부 사람들의 주한미군에 대한 기본인식이다. 그 연장선상에 현 정부와 여당, 그리고 그 지지 세력의 북한관(觀), 국가안보관(觀)이 있다고 여겨진다. 6‧25이후 두어 세대가 지나긴 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지난날을 어떻게 이처럼 깡그리 잊은 듯이 말할 수 있을까. 그 매몰찬 모습이 마음에 충격을 안긴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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