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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의 행복한 경영 이야기] 정몽규와 현대정신

2020-04-20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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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지금은 한국 경제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하이닉스지만 한때는 외국 회사에 푼돈으로 팔려 처리될 뻔했다. 2002년 채권단과 정부가 미국의 반도체 회사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하이닉스를 매각키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하이닉스의 이사회가 채권단의 결정을 거부해 오늘날 하이닉스 부활의 결정적 순간을 만들었다. 채권단의 관리를 받는 회사가 채권단의 결정을 뒤집는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이때 이사회 의장이 하이닉스의 박종섭 사장이었다.

당시 정부는 하이닉스를 팔아야 한국 경제가 산다고 했다. 빚만 15조 원에 달했고 믿었던 반도체 호황은 미뤄지기만 했다. 여론도 싸늘했다. 그러나 내가 볼 때 정부의 하이닉스 매각 방침은 그 자체로 모순 투성이였다.

불과 3년 전 정부는 과잉투자를 조정해야 반도체 산업이 살 수 있다며 LG 반도체의 문을 닫게 했다. 그랬던 바로 그 정부가 빅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제는 반도체 만드는 회사는 삼성 하나면 충분하다며 하이닉스까지 문을 닫게 하려 했다. 정부가 밀어붙인 정책의 실패를 피해자인 기업에다 전가하는 전형적인 책임회피의 모습이었다.

2002년 초 실리콘밸리 출장길에서 나는 우연히 박종섭 사장과 비행기 옆자리에 앉게 됐다.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라 하이닉스의 매각에 대해 비행 중 내내 흉금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었다. 비행기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할 무렵 나는 박 사장에게 정주영 회장이라면 이번 딜(Deal) 어떻게 보실까 하고 물어봤다.

정주영 회장은 현대전자가 TV나 냉장고 같은 소비자 가전을 생산하는 회사는 아니라고 했다. 반도체나 통신 같은 전자산업을 떠받치는 산업 전자를 주력으로 키우려고 했다. 산업을 만드는 산업, 요즘 같으면 소·부·장 산업의 세계적 리더가 되기를 바랐다. 특유의 애국심이 현대 전자의 탄생 배경이었다. 그래서 공식 사명도 '현대 산업 전자'였다.

나의 질문에 박 사장은 “노(No)라고 하셨겠지”하며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잇몸이 드러나는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채권단의 결의를 뒤집은 하이닉스 이사회의 결정을 나는 박종섭 사장의 미소에서 미리 읽었다. 결국 하이닉스 부활의 스토리는 나라 사랑과 산업 발전이라는 정주영의 현대정신이 그 바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주영의 동생 정세영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아버지로 불린다. 정주영은 자동차는 한 나라에 있어서 혈관 속을 흐르는 피라고 했다. 그래서 고유 모델의 개발을 고집했고 정세영이 결국 해냈다.

정세영이 고유 모델을 개발해 낼 때 한국에서의 경쟁 상대는 세계에서 가장 큰 GM 이었다. GM의 한국 대표는 “포니가 완성되면 내 손가락에 잠을 지져라”라고 까지 했다. 방해 공작도 심했다. 그러나 정세영은 고유 모델은 나라의 장래를 사는 것과 같다며 개발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애국심만으로 돈을 벌 수는 없는 법. 자동차는 2만 개의 부품을 조립해야 1대가 생산된다. 그래서 산업의 꽃으로 불리운다. 정세영 회장은 자동차 조립의 모든 공정에 품질관리라는 정성을 더했다. 모든 소재와 부품은 정세영의 섬세한 품질관리를 거치면서 현대자동차를 도약시켰다. 특유의 애국심에 정성을 쏟아부으니 현대 정신이 한 단계 더 진화됐다. 현대자동차는 정주영에서 정세영으로 이어진 현대 정신이 성공의 발판이 됐다.

이제 정세영의 아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HDC) 회장이 현대 정신의 비상을 준비했다. HDC는 건설회사지만 혁신을 도입했다. 한국의 건설 산업은 '노가다'로 불리운다. 그러나 HDC가 선도한 혁신은 새로운 개념의 건축 산업을 한국에 뿌리내렸다. 대충대충 성냥갑같이 지어 놓으면 팔리던 시대에 정몽규는 다른 차원의 건축 문화를 주도했고 I파크라는 상품은 어느새 한국을 대표하는 품격 높은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세련되어진 현대 정신은 새로이 진출한 면세점 사업에서도 빛을 발했다. 같이 출범했던 두산과 한화가 적자를 못 이겨 면세점 사업에서 철수했지만 HDC의 면세점 사업은 작년까지 3년 연속 흑자를 냈다. 애국심에 정성, 그리고 혁신이 가미된 현대정신의 승리였다. 자신감을 바탕으로 HDC의 정몽규는 아시아나 항공을 인수하기로 했다.

항공 산업은 화려하지만 일손이 많이 간다. 어찌 보면 최첨단 기술의 항공기를 운영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국내에만 직·간접으로 83만8000명의 일자리가 있다.

항공 산업은 특이한 것이 또 있다. 국적의 개념이 있어서 KAL이나 아시아나는 국적 항공사라고 불리운다.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가 본사를 한국에 가지고 있다고 해서 국적 자동차회사, 국적 전자회사라고 하지는 않는다. 비행기는 나라에 꼭 필요한 전략적 자산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추측된다. 단순한 운송과 물류를 넘어 나라의 안보와도 연결되는 기간산업이다. 어쨌든 회사의 이름에 국적이 붙는 한에는 구성원의 자부심과 애국심이 있어야 한다.

울산의 아산로에 있는 현대그룹 공장의 외벽에는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길이다'라고 쓰여 있다. 국적을 따지는 항공사 경영에 꼭 있어야 할 애국심은 현대정신과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거기에 항공 산업은 종사하는 사람이 많으니 정성이 들어가고 세심한 배려가 더해져야 한다. 건축을 문화로 혁신하고 면세점 사업을 통해 세련되어진 현대 정신이 아시아나를 통해 빛을 발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졌다. 항공업은 공항에서 공항까지 사람과 물자를 이동시켜주고 돈을 버는 사업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공항이 텅 비었다. 제조업으로 치면 공장이 가동을 멈춘 것이다. 위기도 보통 위기가 아니다.

하이닉스 반도체는 극심한 금융위기를 거칠 때 블루칩 프로젝트(장비 투자 없이 메모리칩을 소형화하는 기술)로 위기를 극복했다. 채권단이 돈의 논리에만 집착했다면 이룰 수 없는 성과였다. 결과적으로 채권단은 예상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그리고 한국경제에는 반도체 세계 1위라는 선물이 주어졌다.

아시아나 항공의 매각 조건은 변화된 환경에 맞춰 바뀌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대우조선을 제때에 매각치 못해 우리가 지금 얼마나 큰 짐을 지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라.

확실한 경영 주체가 나온 지금에는 매각을 전제로 계약이 다시 체결되어야 한다. 돈의 논리에 더해 더 좋은 회사로 키울 수 있는 경영 철학과 기업 문화도 매각의 조건으로 집어넣어야 한다. 지금의 가격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미래의 가치, 그리고 단 한 개의 일자리도 아쉬운 한국 경제에 미칠 당면한 파급효과까지 고려해 주어야 한다. 나라 사랑에 정성스런 품질 관리, 그리고 혁신의 기업문화로 거듭 진화해 온 현대 정신은 이 모든 물음에 후회 없는 정답을 줄 것으로 믿는다. 정몽규 회장의 분발이 기대된다.

글로벌경제신문 경영자문위원/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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